한젬마展

월간미술 2002년 5월호 > review

 

3.27~4.9 금산갤러리

이 전시는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 연결시키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가득 차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전기 플러그와 소켓으로 가득 찬 화면이 보인다. 그 주위에는 지퍼나 벨트로 이뤄낸 평면과 똑닥 단추가 텍스트로 들어앉은 책 등이 있다. 작은 방 한 구석에 다소곳이 놓여 있는 상자는 경첩이 부속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첩을 위해 상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속에는 못·단추·버클·접착제·지퍼·클립·안전핀·똑딱단추·실·압정 등이 담겨 있다. 모두 무엇인가를 ‘연결’시켜주는 도구다.

‘관계- 사람’이라는 제목의 일련의 작품은 못의 흔적을 보여 주는데, 못 역시 무엇인가를 단단히 연결시켜 주는 도구다. 못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축축한 닥죽이나 한지를 오랫동안 덮어놓아 못이 녹슬게 하고 그 녹슨 흔적이 한지에 스며들도록 한 것이다. 못의 흔적은 대체로 인간을 몸을 형상화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몸은 못을 닮았다(겨우 받침 하나 차이 아닌가?). 몸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못은 자신의 몸으로 대상을 파고듦으로써 연결을 이뤄낸다. 연결이 완성되었을 때, 못의 모습은 사라지고 관계만이 남게 된다. 못은 이처럼 자기 희생적 연결 도구다. 한젬마의 못은 나무 속으로 박히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축축한 닥종이 밑에서 철저하게 녹슬고 산화되는 완전한 희생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 녹슨 흔적은 마치 사람 피부 같은 한지에 아픈 상처로 남는다. 여기서 나는 시인 채호기의 못에 대한 노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대의 살 속으로 들어가서/ 그대의 상처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세우는 못이여 (중략) 서로의 아픔이 닿아있어/ 그대 또한 고통 속에 있는 것을/ 그대여 나의 뿌리여/ 그대를 찔러/ 그대의 상처 속에서 비로소 나인 못이여.”

이번 전시를 통해 한젬마는 스스로 하나의 못이 되려 한다.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긴 지퍼가 달려 있는 바지와 작품이 인쇄되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 뒤에 숨어 있길 거부하고 매일 저녁 작품 속에서 걸어 나와 지인을 불러 모으고 쑥스러워 하는 관객을 불러 앉혀 와인 한 잔을 따라 주기도 한다. 그는 관계와 소통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스스로 연결고리의 역할을 한다. 마치 하나의 못처럼. 이는 갤러리를 우아한 관람의 장에서 끈끈한 관계와 소통이 일어나게 하는 친근한 장으로 전환시켜 보려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철학자 정화열의 말처럼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관계적 인간(interhuman)이 된다는 것”이고 “인간의 실존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적인 것이다.” 사실 한자 ‘人間’은 바로 ‘interhuman’을 뜻한다. 하이데거 역시 인간(현존재)의 본질을 관계로 보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과 공존할 가능성을 늘 열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서로-어울려-함께-존재할-수-있기-위한’ 존재다. 인간은 처음부터 ‘타자와 함께 있는’ 존재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정화열이나 하이데거가 이 전시의 지킴이로 초대받았더라면 무척이나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지 않았을까? ■

 
  위 : 수파티스트 <W.C. 아트숍>
아래 : 제2전시실 전경. 한수정<그림자로 보기> 공동작업 <이미지드링크 자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