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

월간미술 2001년 11월호 > Special Feature > 21세기 시각문화를 아는 책

John O'neill, 『The Communicative Body』,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89.

내가 여기서 소개하는 책은 ‘디지털 미디어 혁명’이 사회 문화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궁극적인 발전 방향이 결국 몸 친화적인 매체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과 매체에서 몸의 중요성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오닐의 《커뮤니커티브 보디》의 개념을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오닐은 우리는 우리의 몸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커뮤니케이션은 마음과 마음의 문제이기 이전에 몸과 몸의 문제다. 모든 종류의 매체는 인간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며, 우리가 시공간적 존재(spatio-temporal being)인 것은 바로 우리가 몸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닐은 주로 메를로 퐁티의 논의에 기대어 우리가 이 세계에 거주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을 통해서이며 몸은 지각(perception)이 이루어지는 장(field)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적 경험에 불과한 나의 지각편린을 기반으로 내가 타인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내가 다른 이들과 같은 신체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나의 몸은 직접적 경험의 대상은 아니다. 내가 내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면서도 내 눈 자체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내 몸을 통해서 이 세상을 지각하고 경험하지만 내 몸 자체를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 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물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 양식을 지닌다.

그것은 객관적인 대상도 아니고 주관적인 의식도 아니며 대상과 의식의 결합 또는 객관과 주관의 혼합체인 것이다. 우리의 몸은 결코 세상 속에 존재하는 대상적 사물은 아니며 우리가 세상을 다른 이들과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는 통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몸은 커뮤니케이션적 신체다.

몸의 중요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거쉔펠트(Gershenfeld)의 《생각하기 시작한 사물(When Things Start to Think)》(Henry Holt & Company 1999)에 등장하는 웨어러블 컴퓨터 등 새로운 몸 친화적인 기술들의 의미가 새롭게 와 닿을 것이다.

오늘날 이미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PDA·휴대용 게임기 등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매체를 지니고 다닌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기기들이 서로 직접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사람 몸의 전자기장을 이용하면 별도의 케이블 없이 개인의 몸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휴대용 디지털 매체들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또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물건과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도 얼마든지 데이터를 입출력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할 수 있다.

MIT의 미디어랩 연구자들은 물건에 심어 놓을 수 있는 ‘터치택(Touch tag)’도 개발하였는데 그것은 일종의 ‘전자택(Electronic tag)’이라 할 수 있다. 이 장치가 부착된 물건은 그것을 만지기만 해도 저장된 정보가 사람의 몸을 통해 전달되도록 하는 장치다. 물리적 사물 자체가 디지털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되며 사람의 몸은 그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정보 입출력장치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환경이 점차 하나의 인터페이스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디지털 매체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넘어서서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점차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여기 저기에 편재(ubiquitous)하는 일상적인 인터페이스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며 결국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데이터의 입력과 출력을 담당하는 하나의 커다란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다. 거쉔펠트는 이를 ‘느낄 수 있는 환경(sensible enviro-nments)’이라 부르기도 한다.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읽고 공감한 사람이라면 내친 김에 레빈슨(Levinson)의 《디지털 맥루한(Digital McLuhan:A guide to the Information Millennium)》 (Routledge 1999)까지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맥루한을 통해 디지털 미디어를 이해하고 디지털 미디어 혁명을 통해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 책이다.

맥루한의 기본 명제의 하나인 ‘인쇄된 언어’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움직이는 이미지’가 지배하는 문화로의 전이과정에 대해 스티븐스(Stephens)의 《이미지의 등장과 단어의 몰락(The Rise of the Image the Fall of the Word)》(Oxford University Press 1998)이 한층 재미있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움직이는 이미지는 인간에게 새로운 인식과 철학의 지평을 열어 줄 것임을 여러 가지 예를 통해 보여 주는 책이다.

한편 앞으로 인간의 지식 구조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한 독자는 하이퍼텍스트에서의 정보 매핑과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폴 칸과 크르자이츠토프 렝크의 《웹사이트 매핑》(김주환 옮김 안그라픽스 2000)을 통해 살펴보기 바란다.

저자들은 주로 대형 웹사이트 구축 프로젝트를 경험함으로써 그래픽 디자인의 한계를 넘어서 복잡하고 방대한 양의 정보를 어떻게 가상공간 내에 ‘구축’하고 건설할 것이냐 하는 정보 디자인의 문제를 지도 그리기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