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미술

월간미술 2001년 5월호 > Special Feature > Art & Digital

'디지털 시대'란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고 전달하는 디지털 미디어가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매체 형태인 시대를 의미한다. 디지털 미디어가 미술에 가져올 변화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기존 아날로그 미디어와 어떤 다른 점을 갖고 있는지를 우선 살펴보아야 한다.

디지털 정보의 특성으로는 완전복제성, 즉각적 접근가능성, 조작가능성 등이 있으며 디지털 매체의 주요 특성으로는 상호작용성, 네트워크성, 복합성 등이 있다.

완전복제성(perfect duplicability)은 말 그대로 디지털 정보가 완벽하게 복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날로그 매체에 담긴 정보(예컨대 마그네틱 녹음 테이프에 담긴 음성 정보)는 복제 할 수는 있지만 잡음이 끼어들게 마련이어서 복제를 계속 반복한다면 궁극적으로 그 정보량은 0에 수렴된다. 디지털 정보가 완벽하게 복제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디지털 정보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전혀 새로운 영역에 존재하게 됨을 뜻한다. 완전복제는 원본이 여러 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므로 똑같은 것이 동시에 여기 저기에 존재할 수도 있고 하나의 원본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복제를 반복한다 해도 이론상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낡아 가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도 있다.

즉각적 접근가능성(random accessibility)은 검색어 등을 사용하여 즉시 검색해 볼 수 있음을 뜻한다. 예컨대 아날로그 매체인 종이책에 들어 있는 특정한 정보를 찾기 위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책을 뒤적거려 보거나 책 뒷부분에 마련된 인덱스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종이책의 내용이 컴퓨터 파일로 되어 있다면 검색어를 넣어 원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정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덱스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아날로그 정보와 구분된다. 수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사용되고 있는 것도 디지털 정보의 즉각적 접근가능성 덕분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텍스트(문자열)에 대한 검색만 가능했지만 인공지능의 패턴인지기술이 발달한다면 화상이나 소리정보에 대한 직접적인 검색도 가능해질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관객과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는 작품도 곧 등장하게 될 것이다.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은 디지털 매체와 사용자 간에, 또 디지털 매체로 연결되어 있는 사용자 간에, 또 매체와 매체 간에 여러 가지 형태와 차원의 상호교류가 가능함을 뜻한다. 물론 관객과 작품 간의 상호작용성은 미술에서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온 주제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의 상호작용성은 특히 매체와 매체 간의 자동인식과 지적인 행위자(intelligent agents)의 등장에 의해 완성될 것이며 이는 아날로그 매체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될 것이다.

네트워크성(networkability)은 디지털 매체가 유무선 연결망을 통해 연결될 수 있음을 뜻한다. 물론 그러한 연결망의 범위는 한 개인의 몸에서부터 가정·회사·공동체·국가, 나아가 전지구가 될 수 있다. 전지구적인 네트워크는 인터넷과 저궤도위성망을 통해 이미 실현되었으며 현재는 한 개인이 지니고 다니는 작은 웨어러블 컴퓨터를 연결하는 퍼스널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복합성(multimodality)은 문자·사운드·화상 등 여러 종류의 디지털 정보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텍스트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 매체는 처음 멀티미디어라고 불릴 정도로 복합매체성으로 인해 초기부터 주목받아 왔다. 복합매체성은 디지털 정보가 동등한 질(homogeneous quality)을 갖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날로그 정보의 경우, 음성은 녹음기를 통해 녹음테이프에, 화상은 카메라를 통해 필름에, 텍스트는 펜으로 종이 위에 하는 식으로 별도의 처리기기와 저장매체가 필요했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는 그것이 음성이건 화상이건 문자이건 간에 모두 비트라는 동일한 형태로 존재하며, 따라서 하나의 기계(멀티미디어 컴퓨터)로 처리하고 송수신하고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눈과 귀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손으로 만지고 온몸으로 느끼는(tangible and haptic) 인터페이스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조작가능성(manipulatability)은 디지털 정보의 완전복제성과 즉각적 접근가능성의 결과로 생긴 일종의 '편집가능성'이다. 물리적 사물의 고정적 형태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정보는 조작과 변환에 물리적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는 어떤 형태의 정보든 조작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이나 디지털 녹음은 사실 얼마든지 변환이나 조작이 가능하므로 특정한 사건에 대한 '증거'구실을 할 수 없다.

이러한 조작가능성은 이미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실제로 카메라로 찍은 듯한 생생한 영상을 영화 속에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조작가능성은 실체의 재현이라는 이미지의 근본적인 성격을 상상력의 발현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개념으로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매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물건들을 데이터의 입출력이 가능한 일종의 인터페이스로 바꿔 놓고 있다. 초기의 컴퓨터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유일한 데이터 입력 수단이었으나 이제는 마이크와 카메라가 장착된 컴퓨터가 보편화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몸의 움직임을 직접 인식하는 인지적 매체(sensible media)도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센서가 부착된 의자를 생각해 보라. 그 의자는 앉아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나 몸무게, 체온 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너무 오래 앉아 있었으니 잠시 운동을 하라"고 권유하거나 "앉아 있는 자세가 바르지 않다"는 등의 경고 메시지를 의자 사용자에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의자는 훌륭한 인터랙티브 아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MIT 대학원생들은 커피잔에 커피의 양을 인식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고 이를 커피 머신과 연결시킴으로써 특별한 인공지능 장치 없이도 커피 소비량에 따라 자동으로 커피 머신을 작동하게 하였다. 이제 사람과 기계 간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기계와 기계 간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제한된 정보지만 책상과 의자가, 전등과 방문이, 창문과 난방기구가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기술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또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물건과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에도 데이터를 입출력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할 수 있다. MIT의 연구자들은 '사이버신발'이라는 것을 개발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무용수의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인지하고' 이를 데이터로 전환해 무선으로 서버 컴퓨터로 보내는 장치를 부착한 신발이다.

MIT의 미디어랩 연구자들은 물건에 심어 놓을 수 있는 '터치 태그(Touch Tag)'도 개발하였는데 그것은 일종의 '전자 태그(electronic tag)'라 할 수 있다. 이 장치가 부착된 물건은 그것을 만지기만 해도 저장된 정보가 사람의 몸을 통해 전달되도록 하는 장치다. 이제 물리적 사물이 디지털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되며 사람의 몸은 그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정보 입출력 장치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환경이 하나의 인터페이스가 되는 셈이다. 디지털 매체는 이제 단순히 매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환경과 세상을 변환시켜 가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매체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넘어서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여기 저기에 편재(ubiquitous)하는 일상적인 인터페이스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결국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 데이터의 입력과 출력을 담당하는 하나의 커다란 인터페이스, 또는 '느낄 수 있는 환경(sensible environments)'이 될 것이다.

음성인식기술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인공지능관련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레이 커즈웨일의 견해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뒤면 신경망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두뇌에 정보를 직접 공급할 수 있게 되고, 2020년대에는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과 비슷한 계산 능력을 갖추게 되며, 2030년대에는 컴퓨터의 연산처리능력이 마침내 인간의 두뇌를 추월하게 된다. 결국 컴퓨터와 인간 사이의 뚜렷한 구별이 점차 흐려지고 언젠가 컴퓨터가 스스로 의식이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면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적 행위자는 기본적으로 일정한 학습능력을 부여받는다. 또 여러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자아정체성은 선천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행위자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다. 이러한 이론대로라면 네트워크의 지적 행위자들은 서로 배우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자아정체성을 발전시켜 갈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연구는 지금까지 하나의 독립된 컴퓨터 안에 미리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외부에서 주입함으로써 생각하는 존재를 만들어 내려고 하였고, 결국 그러한 노력은 벽에 부딪혔다. 이제 기본적인 동기와 학습능력, 그리고 대화능력을 부여받은 지적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에 등장함으로써 인공지능 개발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한편 MIT의 합성캐릭터 개발팀은 컴퓨터 기술과 뇌신경과학이론, 동물행위이론, 인공지능이론 등에 기초하여 일종의 지적 행위자(intelligent agents)인 합성 캐릭터(synthetic characters)를 개발하였다. 가까운 장래에 인터랙티브 영화나 게임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될 합성 캐릭터는 전통적 텍스트에서 흔히 나타나는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과 분위기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는 '배경음악'이나 스스로 앵글과 샷을 결정하는 '카메라'도 모두 하나의 독립적인 캐릭터에 포함된다. 나아가 이야기 구조도 다른 캐릭터들을 통제하는 하나의 메타캐릭터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인공지능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합성캐릭터는 기존 매체에 기반을 둔 시각-영상예술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적 복사가 예술에 끼치는 영향을 논의하면서, 기계적 복사(인쇄매체와 사진)는 예술작품의 독특한 권위(aura)를 위협한다고 주장하였다. 벤야민은 플라톤 이래 대부분의 서구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속성이 있으며, 이러한 속성이 곧 그 사물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모든 예술품 역시 이러한 고유의 속성을 갖고 있는데, 기계적 복사본은 원본이 갖고 있는 이러한 진품으로서의 속성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 양식은 원본의 권위를 위협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 버리고 있다. 이미 많은 미술가들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디지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디지털 작품들은 지금까지 원본을 전시하는 장소로 간주되는 미술관이라는 개념에 큰 혼란을 줄 것이다.

지금껏 하나의 원본이 여러 개의 미술관에서 동시에 전시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네트워크성은 화가로 하여금 컴퓨터 파일로 존재하는 자신의 작품을 인터넷을 통해 여러 미술관에 동시에 보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디지털 예술작품은 굳이 미술관에서 전시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 웹 페이지에 가상 미술관을 만들어 그곳에 전시하면 되는 것이다. 관람객들은 편안히 집에 앉아 작품 파일을 전송받아 감상할 수도 있고 원본을 소장(?)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디지털 미술작품들은 생산자(미술가), 소비자(관객), 유통자(미술관과 화랑)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제도(institution)로서의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19세기 말 기계적 복사 기술인 사진의 발명은 처음에 미술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벤야민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위기의식은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순수미술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낳았다. 기계적 복사 기술보다 더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디지털 정보 기술에 대해 미술계가 어떤 새로운 사조로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미술은 디지털 미디어에 많은 영향을 받겠지만 오히려 미술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제시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기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발명자의 의도대로 사용된 기술은 거의 없다. 이는 기술의 의미가 처음부터 내재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인터넷 등의 디지털 미디어 기술은 사용자인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그것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는 결국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삶이 좋은 삶이며, 어떠한 세상이 살 만한 세상인가 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와 직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