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흐름과 교환

월간미술 2001년 2월호 > HIGHLIGHT

김수정 2000.12.19. ~ 2001.5.31. ㅣ 나오코 토사 2000.12.19. ~ 2001.2.18. 아트센터나비

 

  김수정 〈격자무늬〉 2000
특정부분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형상이 다양하게 변한다.

아트센터나비에 들어서니 서도호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반투명의 천으로 둘러싸인 1평 남짓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마침 그 안에서는 한 쌍의 남녀 관객이 일본식 목욕통처럼 생긴 지름 1m 가량의 둥근 나무 수조를 가운데에 놓고 서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마치 다정한 연인 같아 보였다. 로맨스의 필요조건은 환상일 터인데 반투명의 천은 사물과 사람의 모습을 모두 어스름한 환상으로 얼버무려 놓는다. 그 환상의 공간 가운데에 놓인 수조는 자그마한 생태계를 연상시킨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 반짝거리며 찰랑거리고 물가에는 일본식 분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돌, 작은 나무들, 조개 껍데기 같은 것들이 놓여 있어 바닷가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물 속에 커다란 붕어 만한 남녀 인어 두 마리가 헤엄쳐 다니는데 천장에서 매달린 프로젝터에서 투사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무의식의 흐름(Unconscious Flow)〉은 동경대학 정보공학 박사인 나오코 토사가 인정하듯이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그것은 언어나 제스처같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미 합의된 기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몸을 통해(심장의 박동, 손의 움직임 등) 자연스레 드러나는 무의식의 흐름을 직접 소통시키는 매체인 것이다. 두 관람객은 왼손 검지 끝에 심장박동측정기를 달고 오른손으로는 붉은 마커 혹은 푸른 마커를 움직인다. 두 마커 사이의 거리와 두 사람의 심장박동의 변화는 실시간으로 컴퓨터에서 분석되고 이에 따라 미리 저장된 50 여 개의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클립이 수조로 투사된다.

 
나오코 토사 〈무의식의 흐름〉 2000  

관객의 몸 상태가 직접 디지털 비트로 전환되고 그 결과가 미디어로 피드백됨으로써 남녀 인어 사이의 친근함과 소원함을 주제로 한 갖가지 에피소드가 수조 위에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그 두 마리의 인어는 두 관객의 무의식의 흐름과 교환을 드러내는 일종의 아바타인 셈이다. 이 작품의 의의는 몸을 직접 관여시키는 탠저블 미디어(Tangible Media)가 미술작품으로서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성공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데 있다. 힌편 이 작품 바로 옆 현대식 바에는 날렵한 모양의 모니터가 한 대 놓여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그 컴퓨터를 통해서는 김수정의 〈그릿즈〉를 볼 수 있다(www.nabi.or.kr). 물론 파일을 하나씩 내려 받은 후 오프라인으로 샥웨이브 머신을 통해 감상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시디롬 타이틀 등을 제작하기 위해 개발된 디렉터 팩키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는 디렉터와 링고 스크립트 개발자들도 깜짝 놀랄 만큼의 다양한 표현력과 상상력을, 14×14의 바둑판 모양을 바탕으로 한 10가지 샥웨이브 무비에 불어넣고 있다.

일단 〈그리즈〉에 접속하면 관객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새로 얻은 장난감을 이리 저리 살펴보는 어린 아이의 호기심으로 이것 저것 건드리고 눌러 보고 잡아당겨 봐야 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다. 다만 10개의 샥웨이브 무비 제목만이 바둑판 모양 아래에 작은 글씨로 쓰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힌트의 전부다. 예컨대 ‘paint’ 나 ‘proportion’ 또는 ‘music’ 등을 클릭한 후 마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를 보고 나서야 관객은 그것이 왜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비로서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한참 갖고 놀아도 지루하지 않은의 훌륭한 인터랙티브 장난감이다. 여기서 ‘장난감’이라는 표현은 결코 이 작품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상호작용적 디지털 미디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게임이나 오락의 요소를 필연적으로 지녀야 한다는 당위성을 작가가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 호들갑을 떨거나 그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미술적 감수성으로 새로운 미디어나 소프트웨어 발전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는 점이 나오코 토사와 김수정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