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로서의 아방가르드(Avant-garde as software)

ART 2000년 8월호 > Special Feature > 현대미술 7개의 이슈 읽기

레프 마노비치 ㅣ Lev Manovich ㅣ 196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레프 마노비치는 뉴 미디어 아티스트며, 이론가이고 비평가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온 그는 뉴욕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1993년 로체스터 대학에서 영상과 문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컴퓨터 미디어의 기원을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와 연관시켜 설명한 것으로 그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번에 소개하는 논문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뉴 미디어의 언어》(MIT 출판부, 2000)라는 책 외에도 50여 개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 상당수가 20여 개의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apparitions.ucsd.edu/~manovich/

해제 ㅣ 소프트웨어로서의 아방가르드 (Avant-garde as Software)

마노비치의 글은 컴퓨터 영상문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는 디지털 미디어가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1920년대의 좌익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기술들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명령어나 인터페이스의 은유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개념은 ‘은유’다. 새로운 미디어인 컴퓨터와 인터넷은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파일(file)’ ‘저장하기(save)’ ‘열기(open)’ ‘복사하기(copy)’ ‘게시판(bulletin board)’ ‘윈도우(windows)’ 등은 모두 은유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만 새로운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전혀 새로운 현상인 컴퓨터에 대해 은유 없이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노비치는 두 가지 점에 있어 새로운 아방가르드는 과거의 아방가르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첫째, 20년대의 아방가르드는 실체를 표현하는 새로운 형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반면 컴퓨터에 바탕을 둔 뉴 미디어 아방가르드는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조작하는 새로운 방식에 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아방가르드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거나 표현하는 것에 관련되기보다는 단지 이전에 축적된 미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사용하는 데 관련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뉴 미디어는 오래된 미디어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일종의 미디어의 미디어, 즉 메타미디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새로운 디지털 아방가르드 역시 실체를 표현하는 새로운 형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아방가르드는 단지 축적된 미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사용하는 데 국한된다는 마노비치의 입장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완전복제성과 유사 사물성을 지니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는 원본과 사본 간의 근본적인 구별을 무효화시키며 칸트적 의미의 객관적 시공간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마노비치는 뉴미디어의 기본적 역할이 아나로그 미디어로 얻어진 기록을 디지털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재현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 〈토이 스토리〉 〈다이너소어〉 〈타이탄 AE〉 등에 나타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것들이 과연 “기존의 미디어 기계로 얻어진 미디어 기록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 노력에 불과하단 말인가?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을 그대로 디지털적인 것으로 재현해내는 노력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물론 기존 필름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이미 근본적인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우선 제작방식에 있어 실제하는 대상을 ‘촬영’한다는 의미로서의 영화 찍기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림 그리는 것과 사진 찍는 것, 상상하는 것과 실재하는 것 사이의 구분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음을 뜻한다. 유통과 소비의 문제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 디지털 영사기의 보급은 필연적인 추세이며 인공위성과 네트워크를 통한 영화 분배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콘텐트는 완전복제성과 조작 가능성의 문제와 가상현실과 상호작용성의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상호작용의 미디어도 단순히 사용자가 때때로 제한된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일종의 인공지능인 ‘지적 행위자(intelligent agents)’와 사용자 간의, 나아가 지적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그 의미가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노비치는 이렇게 주장한다. “웹의 플래시 동영상은 오래된 비디오 그래픽을 모방하고 있으며, 웹 자체도 컴퓨터 이전 인쇄매체의 레이아웃과 기존 영화와 TV의 관습을 따르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혼합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뉴 미디어가 기존 미디어의 기능과 형태를 답습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 봐야 한다.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라디오의 사회적 잠재성과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전자신문(electronic newspaper)’ 정도로 이해했다(역시 은유다. 사람들은 당시의 새로운 미디어였던 라디오를 신문이라는 올드 미디어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기의 라디오는 신문의 뉴스 기사를 그대로 읽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라디오는 종이신문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인터넷 라디오, 인터넷 영화, 인터넷 방송 등 기존의 미디어 형태를 답습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

마노비치가 결정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점은 ‘윈도우’ 등의 GUI를 구현하는 데스크톱 컴퓨터가 결코 컴퓨팅의 전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GUI는 텍스트 기반 인터페이스가 “만질 수 있는 인터페이스(Tangible User Interface)”로 발전해가는 과정에 잠시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존재에 불과하다. 마노비치가 20년대 아방가르드의 온갖 전형을 발견하는 GUI는 안타깝게도 컴퓨터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신고 다니거나 입거나 몸에 부착하는 컴퓨터, 항상 지니고 다니는 무선 컴퓨터가 데스크톱 컴퓨터를 대체하게 될 것이고 TUI가 보편적인 컴퓨터 인터페이스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과연 우리는 TUI에서도 20년대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여의봉을 귓속에 넣고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던 손오공의 전통을 발견하는 편이 더 쉽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