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박제가 되어버린 내일의 신화

ART 2000년 7월호 > FOCUS

이불展 2000. 5. 19.~6. 20. 국제갤러리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많은 유리 진열장이 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석기시대의 돌칼, 신라시대의 금관, 고려시대의 청자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실한 물적 증거이다. 그것은 물리적 사물 (physical thing)이며, 움직일 수 없는 사실 (unquestionable fact)이고, 객관적 실체 (objective reality)다.

이불의 <미래의 바로크>전에도 이러한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유리 진열장이 등장한다. 그 안에는 고려 청자나 조선 백자처럼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청아한 빛을 발하는 도자기가 들어있다. 그것은 일단 역사적 유물의 아우라를 지니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도자기로 구워낸 사이보그 몸의 일부 (손, 발, 무릎, 가슴 등)이다.

미래의 사이보그를 역사적 유물로 치환시키겠다는 것은 작가의 뚜렷한 의도이다. 그는 얼마 전 구림 마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암도기문화센터의 청동기 시대 무문토기와 구림 마을의 가마터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의 도기를 자신의 사이보그 도자기와 한데 섞어 전시하기도 했다. 시간의 벽을 넘어 과거의 것이 미래의 것과 현재에서 함께 만나게 된 것이다.

이미 고고학적 유물이 되어버린 미래의 사이보그의 파편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이보그는 아직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허구이며, 상상이며, 환상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 나타난 이 도자기 사이보그는 사물성을 갖는 허구이며, 사실이 되어버린 상상이고, 실체로 존재하는 환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하나의 구체적 사물이면서도 순수한 환상인 모순적인 존재다.

 
 
왼쪽 : <슈퍼노바> 오른쪽 : <크리살리스>

<수퍼노바 (Super Nova)>와 <크리살리스 (Chrysalis)>라는 이름이 붙은 거대한 사이보그 몬스터들 역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의 유물이다. 그것은 마치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이미 멸종되어버린 공룡의 화석이나 맘모스의 박제처럼 (아직 오지 않은) 과거의 영화를 간직한 채 잘 보존되어 허공에 매달려 있다. 그것은 내일의 신화이다.

그런데 왜 하필 사이보그란 말인가? 사이보그는 미래 공상 과학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의 혁명적 변환기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현실적 문제이다. 사이보그는 원래 하나의 시스템을 정보의 흐름과 통제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적 생체를 의미하는 “오가니즘(organism)”의 합성어다. 엄밀히 말해서 사이보그는 기계에 불과한 인조인간이나 로봇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개념이며, 오히려 그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맥루한 이래 많은 학자들은 미디어를 인간의 몸의 확장이라 이해한다. 카메라는 눈의 확장이며 스피커는 귀의 확장이다. 세상을 뒤바꿔 놓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혁명의 궁극적인 발전 방향은 인간의 몸이며 결국 미디어는 몸 친화적인 미디어로 발전해 갈 것이다. 많은 컴퓨터 과학자들은 이제 데스크 탑 컴퓨터는 사라지고 우리 몸에 부착하는 “입는 컴퓨터 (wearable computers)”나 아예 우리 몸이나 피부 속에 이식하는 컴퓨터가 보편화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여러 개의 작은 컴퓨터를 몸 여기 저기에 지니거나 이식하고 다니게 될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신경망에 직접 연결되거나 뇌파를 통하여 인간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 직접 조종될 것이다. 로이 애스콧은 실리콘에 기반한 컴퓨터인 드라이 미디어 (dry media)와 인간의 두뇌와 신경망 조직인 젖은 미디어 (wet media)가 결국 통합되어 모이스트 미디어 (moist media)로 발전해가리라 전망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 속의 작은 컴퓨터들은 독자적인 IP 주소를 갖고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우리 몸의 제2의 신경망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고, 나아가 그것은 무선으로 다른 사람들의 네트워크와도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공동체적 신경망을 이루게 될 것이다.

왼쪽 : <플렉서스 블루> 오른쪽 : <사이보그>

이처럼 이미 사이보그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의 단면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플렉서스 (plexus; 신경망)>이다. 사람의 가슴 한 가운데를 둘로 쪼개 열어 놓은 듯한 토르소 연작 <플렉서스>는 수많은 구슬과 반짝이, 그리고 조야한 인공 장식품이 복잡한 신경망처럼 얽히고 설켜서 몸 밖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대 가슴을 여니” 그리움은커녕 난마처럼 얽힌 신경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얼핏보면 머리가 없는 토르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신경망이 화산처럼 폭발하여 분출한 목 위 부분이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니체가 이야기한 것처럼 정신(soul)은 곧 몸의 일부임을, 가슴과 머리는 신경망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작가 이불이 “사이보그”라는 좋은 화두를 더 넓고 깊게, 또 오래도록 천착하여 뉴미디어 기술,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몸의 정치 사회적 의미, 시간의 역사성, 신화의 힘,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환상 등 여러 가지 주제와 관련하여 심도있는 문제제기를 계속해 줄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