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재앙, 실재와 픽션의 서사

ART 2000년 5월호 > FOCUS

임영선展 2000. 4. 11.~4. 30. 일민미술관

<천사의 손>

1998년 8월 13일 새벽. 밤새도록 비는 억수로 퍼부었다. 경기도 광주이 있던 자신의 작업실에서 깊은 잠에 빠졌던 작가 임영선은 매캐한 연기 냄새에 잠에서 깨어났다. 원인모를 화재로 인해 작업실은 이미 온통 연기로 자욱했다. 겨우 몸만 빠져나온 임영선은 그날 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작품들이 화염의 제단에 바쳐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자살자>, <부유하는 영혼>, <방>, <아이낳는 여자> 등 국내외의 여러 전시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들이 모조리 숯검댕이가 되었다.

<천사의 방>은 화재로 폐허가 된 그의 작업실과 작품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설치 작품이다. 불에 그을린 선반과 싱크대, 가스레인지, 후라이팬, 냄비, 전기밥솥, 구두, 심지어 라면봉지까지 그대로 옮겨 놓았다. 전시실을 들어서면서부터 매캐한 냄새도 나고 전시장 바닥까지 불에 그을린듯한 마루바닥으로 덮여 있어 화마가 휩쓸고 간 그의 작업실 속으로 들어 온듯한 느낌을 준다.

화재 현장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오브제나 공업제품의 일부를 거의 그대로 옮겨 전시함으로서 현실의 직접적인 제시를 시도했던 누보 레알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임영선은 장 팅겔리나 레이몽 앵스, 혹은 크리스토처럼 현실 일부를 직접적으로 차압하고 다른 콘텍스트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구성해 내려하지도 않고, 이브 클렝이나 페르낭데 아르망처럼 물체를 무매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비물질화를 추구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화재 현장이라는 실체의 비현실성과 화재 현장의 재현이라는 의도된 비현실의 실체성을 한데 결합해 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천사의 방>은 도큐메터리이면서 동시에 픽션인 것이다.

많은 관객들이 유리 항아리 속에 무엇인가를 담아서 돌리고 찌그러뜨리거나 아니면 커다란 유리판 사이에 실물 크기의 납작해진 사람 모양을 가둬놓는 등의 임영선의 작업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가 이제 지난 날의 작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영선은 <천사의 방>을 통해 새로운 작업 방향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가 이를 성공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투명한 그릇에 실체를 가둬 넣어 일종의 <표본>을 만드는 그의 기본적인 작업 방식은 <천사의 방>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타버린 그의 작업실은 바로 손에 잡힐 듯이 우리 눈 앞에 재현되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즉각적인 현실의 일부가 아니다. 임영선은 화재 현장의 “유물”에서 끔직함과 처절함을 철저히 제거해 버리고 그것의 조형적인 아름다움만을 제공해내는 힘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불에 시꺼멓게 그을린 유리판은 잘 어울어진 한 폭의 수묵화 같아 보이기도 하고 군데군데 숯이 되어버려 금방 무너져 내릴 듯한 나무 선반은 회색과 검은 색을 주제로 한 커다란 모노크롬의 회화 작품 같기도 하다 (아마 이브 클렝이 이 불타버린 선반을 봤더라면 자신의 모노크롬을 전부 불살라 버리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1층 전시실의 화재 현장 재현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느낄 수 있는) 거대한 투명한 용기에 담겨져 있는 유리병 없는 “가둬넣기” 작업이라 할 수 있다.

1층이 화마가 휩쓸고 간 지옥같은 현실 세상이라면 2층은 그 지옥같은 세상에서 화재에 희생된 어린 아이들의 영혼이 웃고 떠드는 <천사의 방>이다. 그 방의 주인인 어린 천사들은 대부분 1993년에 태어나서 모두 씨랜드 화재 사건이 있었던 1999년 6월 30일에 죽어갔다. 1994년에 태어난 내 딸아이의 지금 나이와 꼭 같은 어린아이들이 17개의 작은 비디오 화면 속에서 웃고 떠들며 저마다 재롱을 피우고 있다. 바로 그 옆 방에 어린 천사들의 얼굴모습이 실리콘으로 제작되어 사각의 유리 상자 속에 하나 하나 담겨 있고 (그 어린아이들의 얼굴 모습들은 어쩌면 하나 같이 우리 아이의 모습을 닮았던지) 어린 자식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부모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어딘선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천사의 방> 역시 씨랜드 화재에 대한 일종의 도큐멘터리다. 실제로 화재 사건이 있었고 이 전시는 그 <실제 사건>에 대한 물질적 증거이다. 그러나 그 실제 사건으로서의 화재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하나의 서사 (이야기)가 되고 만다. 작가가 겪었던 작업실 화재와 우리 모두가 겪었던 씨랜드 화재는 그의 작품 속으로 녹아들어 이제는 작품의 소재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그렇기에 <천사의 방>은 완전한 도큐멘터리이면서 또 동시에 완전한 픽션인 것이다.

<천사의 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 목숨마저 거는 그 모든 것이, 언제든 한순간에 한 줌의 재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범한(?) 진실이다. 특히 현대사회의 화려함, 빠름, 복잡함, 현란함이 증가할수록 동시에 모든 것이 일순간에 파괴될 위험성도 증가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以空 空不以色). 픽션은 도큐, 도큐는 픽션. 실체는 꿈, 꿈은 실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

 
 
1998년 작업실 화재현장. 1층 전시실에 현장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