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와 함께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읽기

ART 1999년 12월호 > Exhibition Review

매튜 바니展 1999.11. 19.~20. 아트선재센터

 
위:<크리매스터1> 1994
아래:<크리매스터5> 1997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5 (1997)와 1 (1994)이 드디어 한국 관객에게도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난 11월 19일과 20일 두 작품은 35 mm 필름에 담겨 아트선재센터에서 마치 영화처럼 상영되었다. 관객들은 영화관에서처럼 표를 사고 어두운 “극장”에 앉아서 어서 불이 꺼지고 상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비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나타난 흑기사가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크리매스터 5의 도입부는 완전히 한 편의 할리우드 연상시켜 어디선가 팝콘 냄새마저 풍겨올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관객은 크리매스터가 일상적인 "읽기"를 허용하는 영상 텍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전통적인 영화의 영상 문법을 따르는 척 하면서도 의미 생산에 필요한 상식적인 전제들을 곳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호학자 퍼스의 개념을 빌려 말하자면 해석체 (interpretant)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가추 (abduction)의 전제가 되는 상식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로 하여금 끝임 없이 추측하게끔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슬의 여왕을 부축하는 두 시녀의 구두 밑창에 붙어 있는 낯선 장식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관객은 긴장하여 추측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텍스트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크리매스터 5에는 낯선 것들이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과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화려한 오페라 극장. 진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그 단원들. 이런 것들은 친숙한 오브제다. 객석에 자리를 차지한 것은 여왕 하나 뿐. 그러나 그 여왕은 관객이며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프리마돈나이다. 무대 위에는 마술사로 분장한 배우가 하나. 그러나 그 배우는 무대 위에 있지 않다. 무대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무대 안의 가상 세계와 무대 밖의 현실 세계를 구분하고 있는 경계선을 타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한 마리의 벌레처럼. 그러나 그 벌레는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낯설다.)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오는 흑기사의 모습 역시 어딘지 서사적이고 친숙하다. 그러나 그 흑기사는 갑자기 외투를 벗어 던지고는 알몸이 된다. 하얀 플라스틱 장갑을 끼고는 하얀 구슬을 손과 발로 거머쥐고 스스로 손발을 하얀 사슬로 묶는다. (낯설다.) 그리고는 다리의 난간 위에 선다. 마치 하나의 대리석 조각처럼. 어두운 밤 다리 난간 위에 서 있는 하나의 대리석 조각상. (친숙하다.) 문득 문득 회상처럼 끼어드는 사슬의 여왕과 흑기사 간의 키스 장면도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친숙하다.

크리매스터 1 역시 친숙한 것 (30년대 댄스 음악과 무희들, 미식 축구 경기장, 제복차림의 비행기 여승무원, 포도알)과 낯선 것 (무희들의 복장, 축구 경기장을 뒤덮은 파란색, 테이블 밑의 여자, 그 여자 한쪽 구두 밑창에 달려 있는 나팔관처럼 생긴 이상한 장식 또는 배출구)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의 관계 속에서 크리매스터에 등장하는 대상 (object)들은 (다시 퍼스의 개념을 빌려 말하자면) 하나의 의미를 지시하는 즉자적 대상 (Immediate Object)이 아니라 의미 분화 이전의 역동적 대상 (Dynamic Object)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테이블 밑의 굳이어가 배열하는 포도알들은 포도이면서 동시에 포도가 아니다. 그것은 무희들을 지시하는 인덱스이면서 또 동시에 아이콘이고 상징이다. 매튜바니의 고환을 묶은 끈을 감고 아름답게 날아오르는 하얀 새들 역시 새이면서 동시에 새가 아니다.

두 작품은 유사한 수직적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분할하자면 크리매스터 5의 상층부는 여왕이 앉아 있는 오페라 극장의 자리이다. 그 이상한 자리에는 구멍이 나 있으며 그 아래는 목욕탕이 내려다 보인다. 목욕탕의 물은 하얀 구슬로 덮여 있다. 그 물 속에선 요정들이 헤엄치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페라 극장 (상층) -->목욕탕 (중층) -->물 속 (하층). 이 구조는 조각이 되어버린 흑기사가 서 있는 다리 위에 투영되어 있다. 강물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다리 (상층) --> 흐르는 검은 강물(중층) --> 물 속 (하층). 목욕탕 물 속이나 강 물 속 모두 따뜻하고 평화로와 보이며 요정들이 헤엄치고 있고 또 하얀 꽃들로 가득하다.

크리매스터 1 역시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비행선 (상층부)과 운동장 (하층부)가 그것이며 비행선 내부 역시 포도가 놓여 있는 테이블 위 (상층부)와 굳이어가 꿈틀대고 있는 테이블 아래 (하층부)로 나뉘어져 있다. 굳이어는 테이블 보를 찢고 테이블 아래에서 테이블 위의 세계를 옅보고 있으며 포도알을 훔쳐내어서는 자신의 몸을 통해 구두 밑창으로 “분만”해낸다.

두 작품이 공유하는 또 하나의 일관된 구도는 좌우대칭이다. 두 대의 굳이어 비행선, 그 안에 있는 네 명씩의 여승무원들, 무희들의 대형, 사슬의 여왕을 시중드는 두 명의 시녀, 여왕의 머리 장식, 위에서 내려다 본 목욕탕의 모습 등 거의 모든 장면과 오브제에 좌우 대칭 구도의 구도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두 작품은 또한 구와 원형의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 크리매스터 5의 도입부와 엔드 장면을 장식하는 목욕탕 물 위에 뒤 덮여 있는 하얀 구슬들에서부터 조각이 되어버린 흑기사가 쥐고 있는 하얀 구슬, 여왕과 굳이어와 매튜바니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투명한 구슬, 수 많은 포도알, 축구장 위 무희들의 원형 옷, 그들이 들고 있는 둥근 풍선들, 비행선 안의 여승무원들의 둥근 귀걸이에 이르기까지 구의 이미지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좌우대칭과 구. 여기서 우리는 어쩔수 없이 고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크리매스터 (고환을 수축시키는 근육)라는 제목을 생각해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고환”을 이 작품들의 최종해석체 (Final Interpretant)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튜바니의 고환을 엮은 줄을 감고 하늘로 나는 아름다운 하얀 새들의 모습이 굳이어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펼쳐들고 비행선을 잡고 있는 모습에 겹쳐질 때, “고환”은 또 다른 기호현상의 시작을 위한 하나의 해석체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크리매스터와 함께 퍼스가 말하는 바의 무한 연속의 기호현상 (unlimited semiosis)의 여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