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열의 몸의 정치학

ART 1999년 10월 창간호

정화열(66, 미국 모라비언 대학 교수)은 미국 정치철학계의 거두이며,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정치학에 접목해 '정치현상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일구어낸 정치철학자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89년 그가 서울대 정치학과에 교환교수로 초빙되어 와서 방법론을 강의할 때였다. 그 후 5년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공부할 때 나는 자동차로 달려 1시간 거리에 있는 모라비언 대학으로 그를 자주 찾아가곤 했다.

세계적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화열을 그 명성이나 업적에 비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독자에게는 낯선 존재였다. 정치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나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랄까. 그러다가 96년 민음사가 발간하여 화제를 모았던 책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 103인>에 소개되면서 일반인으로부터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책에는 한국인이 4명 선정되었는데, 그 4명 중에 정화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그의 철학과 삶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환경운동을 옹호하는 <녹색평론>과 인문학 계간지 <현대사상> 등이 정화열의 논문을 번역 소개했고, 97년 봄에 번역 출간된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에는 그의 글 <메타 주석>이 함께 실리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논문을 모은 책 <몸의 정치>가 박현모(원광대 강사)에 의해 번역되어 올해 발간되었다.

몸철학에 바탕한 몸의 정치 이론

30년대 사회과학계는 심리학적 방법론이 각광을 받은 시기였다. 특히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심리학적 방법론은 모든 사회과학 방법론의 기본으로 받아 들여졌다. 물론 정치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정치학은 '정치과학(political science)'이라는 이름 아래 경험주의적인 방법만이 유일한 진리 발견의 수단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이 같은 정치의 과학화 물결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시카고의 레오 스트라우스 학파이다. 스트라우스는 '과학 이전의 세계'에 직접 다가가는 플라톤의 방법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과학'에 대립하는 정치 '사상' 분야를 가지고 정치학계를 주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60년대 미국 정치학계는 심리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형태주의 학파와 스트라우스 학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정화열은 양쪽 모두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미국 정치학계에 큰 관심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정화열은 행태주의를 비판하는 스트라우스 학파의 주장에 기본적으로는 공감하지만, 그 역시 인간의 역사성과 우연성을 간과하는 본질주의에 빠졌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그 대안으로 후설의 '생활세계(Lebeswelt)'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정치현상학' 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로 인해 정화열은 현상학을 정치학 이론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정치철학자로 알려졌다.

하이데거와 후설과 슈츠의 생활세계라는 개념을 탐구하던 정화열은 인간의 몸의 중요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는 생활세계야말로 우리 몸이 직접 부딪치면서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믿었다. 공간이나 시간이라는 근본 개념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몸이 있으며,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고 경험하는 것도 바로 몸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정화열은 근대 서양 철학에서 몸은 '철저히 소외된 철학적 담론의 고아'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흉(?)으로 데카르트를 지목한다. 객관과 주관, 인간의 의식과 의식 대상, 몸과 영혼 등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이원론적 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 바로 데카르트라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곧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몸이 아니라 의식(consciousness)에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와 달리 '난'는 단지 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존재하는 실존적 존재이며 구체적 실체라는 것이 정화열 몸철학의 핵심이다. 의식은 관념이고 몸은 실존이다.

따라서 철학의 출발점은 의식이 아니라 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화열은 서양 철학자 중에서 몸의 중요성을 최초로 지적한 니체를 높이 평가한다. 그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나의 몸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은 몸에 대한 어떤 것을 말에 불과하다."

이러한 몸철학을 바탕으로 정화열은 '몸의 정치(body politics)' 이론을 펼쳐간다. 우리가 진정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몸에 기반을 둔 주관성과 몸과 몸으로 맺어지는 인간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정화열의 주장이다.

또한, 인간 사회의 진정한 윤리적 기반은 '나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회와 공동체는 타자와의 상호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타자는 항상 타자의 몸으로 나에게 나타나며, 나 역시 나의 몸으로 상대방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화로 상대방과 대화한다는 것은 결국 내 성대의 울림이 타자의 고막을 흔드는 것이다. 편지를 쓴다는 것 역시 타자의 망막을 일정하게 자극하기 위해 펜을 든 나의 손을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정화열은 자신의 몸철학과 바흐친의 '대화주의(dialogism), 레비나스와 맥머리 등의 '타자 우선성' 개념을 융합하여 책임의 정치 이론을 펼쳤다. 개인의 의식을 절대적 출발점으로 삼는 데카르트식 철학에 바탕을 둔 서양의 개인중심주의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룬다는 것은 요원한 꿈일 뿐이며, 오히려 의식보다는 몸, 개인보다는 공동체, 주관성보다는 상호 주관성,그리고 무엇보다도 권리보다는 책임을 우선시해야만 참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화열의 입장이다.

몸, 지각의 살아 있는 장

내가 보기에 정화열의 몸철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메를로 퐁티이다. <지각의 현상학>에서 메를로 퐁티는 지각된 세계는 항상 모든 지각과 인간 행위의 근본이라고 전제하는데, 그것은 몸이 '지각의 살아 있는 장(lived field of perception)'이기 때문이다. 몸과 세계가 직접 맞닥뜨려 이루어지는 지각은 개념이나 의식에 앞선다. 지각된 세계야말로 후설의 생활세계이며, 스트라우스의 과학 이전의 세계이고, 인간의 정치적 사회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배경이다.

몸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다. 몸은 인간 존재의 한 구성 부분이다. 몸과 자연이 만나는 과정이 바로 지각이라는 인간의 행위이다. 여기서 지각하는 사람과 지각되는 대상 사이에 근본적인 구분이란 있을 수 없다. 세계와 인간의 일체성은 바로 메를로 퐁티가 말한 '지각된 것으로서의 세계'의 진정한 의미이여 정화열 몸철학의 핵심이다.

이처럼 지각하는 주체와 지각 대상의 일체성으로부터 정화열의 생태철학은 출발한다. 몸과 자연이 맞닥뜨려 이루어지는 세계가 바로 인간 실존의 근본 배경이기 때문에 자연은 결코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류는 자연을 두려워하던 시가(geopiety)와 인간만을 중요시하던 시기(homopiety)를 극복하고 생태 존중의 시기(ecopiety)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정화열의 주장이다.

몸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정화열의 철학은 일찍부터 환경과 생태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왜냐하면 환경 문제야말로 몸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70년 제1회 지구의 날을 기념해 발표한 논문에서는 생태현상학적인 관점으로 선불교와 생태철학을 연결지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정화열은 또한 현대미술에 나타난 몸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여러 논문에서 자신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미술작품을 자주 언급하였다. 미술작품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지각의 장(the field of perception)으로서의 몸의 문제를 가지고 다음호부터 연재될 정화열 교수의 몸철학에 대한 에세이가 우리나라 미술비평에 논의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